가나안의 기근은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각오는 했으나 이놈 많이 맵다.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그분의 심장을 느끼며, 오직 사랑하는 그분을 위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막막한 길의 끝자락에 다다를 때면, 눈앞의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진정 그분의 뜻인지 모호함에 빠지곤 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존재하시는 그분은 지난날 나의 선택이 오늘날 이토록 처절한 고통과 번뇌가 되어 돌아올 것을 분명 아셨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를 이런 환경에 놓이게 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한 내가 그분의 권면을 거절하지 않고 수용할 것임을 아셨을 텐데, 이 모든 결과는 온전히 나만의 자유의지가 빚어낸 산물인가.
며칠을 목마름에 지친 이에게 시원한 생수 한 잔은 거부하기 힘든 섭리다. 하나님은 갈증에 허덕이는 내가 그 물잔을 결코 밀어내지 못할 것을 아셨으면서도 왜 내게 그 상황을 허락하셨는가.
임사체험자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이십 대 초반 하나님을 만난 후 '용서'를 통해 의식을 묶고 있던 사슬을 푸는 영적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랑'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며 또 다른 성장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는 중이다.
산적한 업무와 문제들이 나를 포위하고 있지만, 심연의 늪에 빠진 무력한 행위에 '번아웃'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하며 모든 현실로부터 회피한다. 이차원(異次元) 너머의 사랑을 동경하며 영혼은 꿈에 취해 비틀거리고, 어느 날엔 전지적 작가의 시선 아래서 사랑하고 기뻐하며 춤을 추기도 한다.
자신을 향한 가학적 성향은 영혼을 더 깊은 심연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아, 이 늪은 실로 바닥이 닿지 않는 음부다. 어찌할 도리 없는 이 모습이야말로 나의 본연(本然)일지도 모른다. 깊은 동굴 구석, 벼랑 끝에 몰린 자신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안식을 맛본다.
동굴 밖으로 발을 내디뎌 보려 하지만, 나를 향해 포효하는 사자의 이빨 앞에서 다시 동굴 깊숙이 웅크리며 그분의 긍휼만을 구한다. 년구월심(年久月深) 속에서도 마귀는 여전히 굶주린 사자처럼 내 목덜미를 노리고, 나는 여전히 심연의 늪에서 무력함에 기대어 삶으로부터 도망친다.
대적을 향해 높이 치켜들었던 검은 이제 광야에 버려진 전사의 거추장스러운 짐으로 전락했다. 심연에 빠져 정의와 용기를 잃어버린 초라한 빛의 전사여!
그대의 검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의 방패는 어디에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