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의 기근은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각오는 했으나 이놈 많이 맵다.
2015년, 사회적 사명을 실현하고자 별내지구에서 O2O 비즈니스 '피알북'을 시작했다.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던 찰나, 예기치 못한 메르스 사태로 사업을 접어야 했다.
이듬해 내게는 매력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집에서 20분 거리인 신규 지하철 노선의 IT 관리직으로, 10년 계약이 보장된 소위 ‘꿀보직’이었다. 웹에이전시 특성 상 기업파견으로 기본 1시간 30분에 어느 때는 주말에만 집에 오던 파견직의 삶을 살아온 내게는 꿈같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나는 목하고민 끝에 10년 전 사명으로 받아들였던 그 일을 완성하기 위해 다시 도전을 선택했다.
창업 후 아이템은 창업지원과 국가연구개발 사업에 네 번이나 선정되는 등 많은 정부 기관의 인정과 지원 속에 2022년 2월, 마침내 서비스를 런칭했다. 7명의 팀원과 함께 호기롭게 영업과 홍보의 기치를 올렸지만, 이번에는 코로나라는 거대한 장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백신만 나오면 회복될 줄 알았던 기대와 달리 상황은 악화되었고, 나는 다시 한번 사업의 좌절을 맛보았다.
이 좌절 끝에 나는 나의 신앙과 사명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왜인가. 주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려 했던 길에 왜 이토록 가혹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는가. 어머니의 눈물 어린 기도로 얻은 귀한 생명이 전신마비가 되고, 주를 향한 열심으로 새벽을 깨운 발걸음이 죽음의 문턱에 닿는 비극을 왜 허락하셨는가. 사랑과 자비, 응답과 인도라는 신앙의 명제들 앞에서 나는 멈춰 서서 묻고 있었다. "하나님, 도대체 왜입니까?"
혹자는 나의 실패에 대해 그때 다른 선택과 행동을 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일 뿐이다. 당시 나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그 선택이 최선이었으며,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스포츠 경기에서 패배한 감독을 향해 네티즌들이 비난을 쏟아내며 "이랬어야 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실패의 경험이 쌓인 지금이라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겠지만, 그때의 내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무렵, 나는 아우디 A6를 리스했다. 암이 전이되어 투병 중이신 아버지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지켜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 자격증 현장수업으로 요양원의 실태를 잘 알기에 직접 간병을 결정했지만, 내가 어렵다면 결코 도움을 받지 않으실 아버지였고, 이미 수년 전 비슷한 문제로 크게 다툰적이 있기에 아버지의 반응은 불보듯 자명하다.
아버님께는 사업의 건재함을 설명하는 백 마디 말보다, 눈에 보이는 지표가 더 큰 신뢰를 주리라 판단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신뢰하는 세대답게, 고급 차량은 아들에 대한 못미더움을 해소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아들에게 간병을 맡겨도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신 듯 아버지는 비로소 아들의 간병을 편히 받아들이셨다. 고향 땅 농막에서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모셨다. 함께하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아버지라는 한 남자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
주일이면 고향의 작은 예배당에서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예배를 드린다. 아버지는 목사님들의 체면을 생각해 만나는 분마다 예수님을 영접하시는 분이지만, 한편으론 유교 전통이 강한 집안의 장남으로서 마음 편히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분이기도 하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아버지께 임하기를 바라며, 오늘도 아버지와 함께 예배의 자리를 지킨다.
어느 날, 아버지, 나, 여동생 모두가 코로나에 확진되어 농막에서 자체 격리 중 아버지는 소천하셨다. 지독한 코로나의 후유증 속에서 어떻게 장례를 치렀는지도 모를 혼미한 시간이 흘렀고, 부모님을 모두 떠나보낸 슬픔은 이제 우울이 되어 내 내면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
초가삼간의 처소에도 자족하며,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겠다던 그 다짐이 연이은 시련과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도 변함없이 온전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맺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