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취의 순간 찰나로 지나가고 나는 다시 행복을 갈망하며 산야를 헤맨다.
“◯◯야! 낚시하러 가자!”
도일이가 밖에서 나를 부른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었지만 나는 친구의 우정 어린 부름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엄마에게 독서실에 가서 코피 터지게 공부하고 오겠다 허언하며 용돈을 타낸다.
우린 강남역에서 반월 저수지행 버스를 타고 친구와 콧노래를 부르며 출발을 했다.
그곳에 죽음을 향한 서곡이 흐르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월척아! 기다려라! 우리가 왔다!”
반월 저수지에 도착한 우리는 저수지 안쪽 깊숙한 곳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월척의 입질을 기다렸다.
하지만 오후가 되도록 죄 없는 지렁이만 수십 마리 희생되었을 뿐 별 입질이 없었다.
오후의 따갑던 햇살이 저녁노을을 부를 무렵, 나와 도일이는 우리가 오니 고기들이 다 도망간 것 같다는 허세를 주고받으며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바로 그때! 물에 반쯤 잠긴 작은 배가 우리 앞에 보이는 것이 아닌가.
도로변에서 한참을 안쪽으로 들어왔기에 우리는 배를 타고 저수지를 가로질러 버스 정거장으로 가고자 했다.
우리는 배에 있는 물을 다 퍼낸 뒤 책가방과 낚싯대를 싣고 저수지를 노 저으며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에헤라디요~ 어기여차~ “에헤라디요~♬”
나무배에 몸을 실은 후 나는 열심히 콧노래를 부르며 노를 저어가던 나는 힘에 부치기 시작해 도일이에게 자리 바꾸어 노를 젓자고 말했다.
노가 배에 고정되어 있어서 자리를 바꾸어야 노를 저을 수 있는 배였다.
우리가 서로 자리를 바꾸기 위해 일어났고, 순간! 갑자기 배가 균형을 잃으면서 뒤집어지며 우리는 물속에 빠져 버렸다.
어릴 적, 시골 냇가에서 개헤엄 친 게 전부인 나는 열심히 뭍을 향해 몸부림치며 나아갔다.
한 4 ∼ 5M를 헤엄쳤을 즈음 나는 TV에서 본 수영선수들처럼 수면에서 팔다리를 천천히 움직이며 쉼을 가진 뒤 다시 헤엄쳐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수들과 똑같이 팔다리를 휘젓었지만 나는 조용히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내려간듯한 저수지 바닥에서 나는 그제야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아, 난 수영을 못하는구나…! 그리고 여기 내 키를 훨씬 넘는 저수지에 지금 빠져가고 있구나.. 그럼 난 이제 죽겠구나.."
개똥 삼단논법으로 나는 두려움이 사로잡혔고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몸부림쳐 물 밖으로 솟아오른 뒤 낚시꾼들을 향해 외쳐대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헉! 헉! 살려주세요!”
“아이고! 저걸 어째! 사람이 죽게 생겼네! 아이고! 저걸 어째!”
도로 쪽에서 낚시하시던 어른들은 안타까워하시면서도 용기를 내시는 분은 없었으며 한동안 바둥거리던 나는 다시 저수지 밑바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코로 입으로 물은 자꾸 넘어오고 더욱더 두려운 건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감싸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건 개죽음이다. 우리 집안과 학교에 먹칠하는 개죽음이다.
독서실 가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나간 중학생이 낚시터에서 물에 빠져 죽었다고 내일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난다면 이 무슨 가문과 학교에 불명예스러운 일인가
나는 지금 죽어선 절대 안 된다~ 살아야 한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가문과 학교의 명예를 생각한 나는 다시 있는 힘을 다해 물 밖으로 목을 내밀며 외쳐대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헉! 헉! 제발 살려주…"
마지막 말도 끝을 맺지 못하고 나는 다시 물속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었다.
"하나, 지금 죽으면 나는 천국행이냐 지옥행이냐
둘, 사람이 물에 빠지면 세 번까지는 물 밖으로 목을 내밀 수 있지만 네 번째에는 힘에 부쳐 물속으로 가라앉아 죽는다던데.."
그런데 나는 방금이 두 번째였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기회는 단 한 번!
물속에서 남은 기회는 단 한 번 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생사의 기로에 직면한 순간!
나의 눈앞에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삶의 크고 작은 추억의 시간이 영화 필름처럼 지나갔다.
이 현상은 죽음에 직면했던 사람들의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잠시 후 필름이 마지막 그림에서 멈추고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
‘아! 이제 정말 죽음의 문턱을 건너는구나!’
세 번째 물 밖에서 바둥거리던 나는 혹 살아 계실지도 모르는 아니, 죽음의 문턱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하나님 앞에 간절히 절규했다.
“하나님! 제발!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저 살려주시면 50원 하던 헌금 500원 할게요. 오! 하나님!!! 제발~”
나는 통기타를 배우기 위해 전도사님이 강사로 있는 개척교회 기타 학원에서 기타 배우는 동안 예의상 나가며 내고 있던 헌금 50원의 10배 되는 500원짜리 헌금 빅딜(Big Deal)을 던졌다.
“하나님! 제발 이번에 살려주시면 헌금도 500원 할 뿐 아니라 교회도 열심히 나가고 전도도 하고 또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공부도 진짜 열심히 하고~”
그러나 몸의 힘은 점점 빠져나가고 그제야 저 멀리 옷을 벗고 나를 구하려고 물에 발을 담그는 아저씨가 희미하게 보였다.
‘에구, 아저씨. 이미 늦었습니다. 전 이제 네 번째로 물에 잠깁니다. 이젠 힘이 빠져서 더 이상 버틸 힘도 없어요.."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물속으로 가라앉는데 할렐루야!! 발밑에 뭔가가 나를 받쳐 주는 것이 아닌가.
기적이었다.
물결도 흐르지 않는 저수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내 발밑에 4 ~ 5M 뒤에 가라앉았던 배가 내 발을 정확히 받쳐줘서 목이 물 밖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에이! 깊지도 않은데 장난친 거잖아…?”
사람들은 내 키보다 낮은 물에서 내가 장난친 줄 알고 한마디씩 하시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지금 내 발밑에 배가 있어서 그래요…! 저 좀 꺼내주세요…! 전 수영 못해요…!”
나를 구하기 위해 물에 들어오시던 고마운 아저씨는 내게 헤엄쳐 다가오셔서 한마디 하셨다.
“너 힘쓰면 안 구해준다.”
“네~ 아저씨! 이제 쓸 힘도 없어요. 어서 꺼내주세요.”
아저씨는 나를 꺼내주고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가방도 건져주셨다.
나와 도일이은 물에 빠져 너덜너덜해진 천 원짜리 지폐로 꼬깔콘을 사 먹으며 버스 타고 무사히 서울로 올라올 수 있었다.
이때, 너무 경황이 없어 아저씨께 감사하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 도로 건너편 논으로 가서 맑은 물에 지갑과 얼굴을 씻기 바빴다.
그때 용기 내어주신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집에 돌아오자마다 내 방 잠자리에 누워서야 "살아있다"는 안도감이 나를 진정시켰다.
"하나님이 정말 내 기도를 들으시고 살려주신 것일까? 아니면 우연히 배가 흘러왔거나 내가 바둥거리다 배가 가라앉은 쪽으로 이동하다 걸친 것일까?"
나는 반신반의(半信半疑) 하며 곧 깊은 잠으로 스며들었다.
죽음과 키스한 그날 밤 숙면을 취하고 맞은 아침, 난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예의상 다니던 교회도 결석하고 빈번한 가출을 일삼으며 풍진노도((風塵怒濤)의 삶을 살아간다.
결혼 후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교회에서 선교후원하는 자매님의 선교사역 보고를 겸한 헌신예배를 드렸다.
나는 평소 500원짜리 동전만 모아두었던 저금통이 있었는데 저금통째로 선교헌금을 하기로 작정했다.
나는 저금통째 헌금을 했는데 겸손하 척하면서도 꼬박꼬박 모아두었던 500원짜리 동전을(대략 10만 원) 헌금했다는 대견한 마음에 뿌듯해했다.
그 순간 내 마음에 하나님이 음성이 울려 나왔다.
“◯◯야! 네가 내게 헌금하기로 한 500원 이제 받아 간다.”
하나님의 음성에 기쁨도 순간이었으며 잊고 있었던 그때 절규의 약속이 떠오르면서 민망함과 부끄러움 속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니님! 죄송해요.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오래 참아주시면서 이런 은혜로운 방법으로 깨닫게 하신 후 받아 가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