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의 시간에 내 해마에 담긴 그날의 기억을 꺼내어본다.
강동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이 학교는 서울에서 문제 있는 학생들만 입학하는 학교로 학급마다 재수생은 물론 삼수생도 넘쳐나는 세렝게티의 무법천지 그 자체였다.
첫날, 선생님은 떡대 넘치는 재수생 ◯◯을 반장으로 임명하셨는데 며칠이 못가 사단이 일어났다.
엄재성 이라는 중학교 동창이 있다. 반장 주변에 자리가 배치되었는데 수학 시간에 반장이 재성이를 자꾸 괴롭힌다.
재성이는 몸도 좋고 중학교 때 학급짱으로 특히 씨름 기술이 좋은 친구인데 워낙 학교가 무법천지에 교도소 조폭 같은 녀석들이 학급마다 두어 명 있다 보니 조용히 살려는가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장의 괴롭힘으로 친구의 곤란함은 끝날 줄 몰랐고 결국 나는 반장에게 조용히 말했다.
"반장, 그 아이 내 친구다. 너무 괴롭히지 마라."
나는 한창 성장기에 끼니 제때 못 챙겨 먹고 담배도 일찍 피워서 그런지 중학교 2학년 때 성장이 멈추어 버렸다. 아마 반장에겐 첫인상이 만만해 보이는 놈이 자신에게 경고를 하니 본때를 보여 주고 싶었을거다.
"뭐 새끼야?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작년 폭력 사건으로 집안 재정이 거덜 나 고등학교 때는 정말 조용히 지내려고 했는데, 이놈은 떡대도 좋고 맷집도 강해 보여 병원에 입원하진 않을 것 같았다.
난 결심했다. 내가 오늘 이 반의 약하고 고통받는 친구들을 위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리라.
"뭐~ 씨발놈아, 내 친구 괴롭히지 말라고! 한 번 말하면 들어 이 새끼야~"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수학 여선생님은 판서 도중 내 목소리에 놀라 돌아서시며 말씀하신다.
"어머, 이러지 마세요. 수업 시간에 싸우지 마세요."
선생님이 계신 학급 내에서 싸우는 건 아닌 것 같아 반장에게 따라 나오라며 교실을 나섰고 반장은 너 잘 걸렸다는 듯 바로 따라나왔다.
학교 건물을 나와 붙을 장소를 찾으려는데 소란한 소리에 창문을 내다보던 학교 학생들은 흥미로운 광경에 소리친다.
"싸워라~ 싸워라~"
예상치 못한 소란스러운 상황에 반장에게 말했다.
"우리 수업 마치고 붙자."
반장은 동의했고 우린 다시 학급으로 돌아와 수업을 마친 뒤 결투할 장소를 찾아 교문을 나섰다.
우리 반 아이들 십여 명이 따라왔고 처음엔 야산에서 붙을까 했으니 선배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쉬고 있었기에 우린 학교 주변 빌라 재건축을 위해 허물어버린 공사 부지를 오늘의 링으로 정했다.
십여 명의 아이들은 우리 두 사람을 에워싸고 있었고 난 반장을 물론 주변 아이들에게 전쟁의 명분을 선포했다.
"난 네가 반장으로서 친구들을 괴롭히는 걸 참지 못보겠다. 오늘 네가 죽든 내가 죽든 이 문제로 한 놈은 죽자. 덤벼 이 새끼야~~"
말을 마치고 주먹에 힘을 주며 반장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데 순간, 반장이 외친다.
"잠깐~!"
순간 나는 멈칫했고 반장은 내게 자기가 잘못한 것 같다며 사과를 한다.
난 그 사과를 받아들였고 그날의 결투는 다소 허무하게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조회시간이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시끌벅적하던 반이 조용해진다.
"어제 반장과 ◯◯◯ 간에 일을 들었다. 오늘부터 이 학급의 반장은 ◯◯◯다."
난 기쁘지 않고 도리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다음 글로 풀어보겠다.
얼떨결에 반장이 되었는데 엄마는 아들이 반장 되었다고 참 좋아하신다. 없는 살림에 학급에 커튼도 달아 주시고 아마 내가 성적이 좋거나 품행이 단정해서 반장이 되신 줄 아시나 보다.
담임 선생님 성함이 유시철 선생님이시다. 총각 선생님이셨는데 그 해 결혼을 하셔서 나와 부장 두 명은 결혼식장이 있는 남원에 내려간다.
난 반장 대표로 선생님께 우리가 준비한 축하 선물 증정을 드린 후 피로연에서 남원 동동주를 한두 잔 마셔보았는데 그 맛이 그리 달달하고 좋을 수 없다. 올라오는 학교버스 안에서도 선생님들께 한두잔 능청스레 얻어먹으면서 올라온 예쁜 기억이 난다.
반장 완장을 차고 난 뒤 얼마 안 지난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식후 연초를 몇몇 친구들과 피우며 있는데 처음 보는 놈이 들어와 나와 친구들을 유심히 보고 나간다.
오후 수업 시간 중 갑자기 한무리의 학생들이 들어와 선생님께 부탁 아닌 부탁을 한다.
"선생님, 저희는 규율부 학생입니다. 오늘 점심시간에 반 내에서 담배를 피운 학생들이 있어 교육하고자 방문하였습니다."
역시 세렝게티의 무법천지 학교답다. 선생님은 익숙하시다는 듯 그러라고 하시고 규율부는 나를 비롯한 친구들을 찾아내 불러내기 시작했다.
맞다. 점심때 물끄러미 바라보고 나간 놈이 규율부인지는 모르겠으나 흡연 사실을 알려 후배들에게 본보기를 보일 생각인 것 같다.
우리는 빈 교실로 이동했다. 그곳에 이미 몇몇 선배들이 미리 와 있었고 우린 후배로서 선배들의 기강 어린 손길과 발길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규율부는 몽둥이로, 권투부는 주먹으로, 축구부는 발로.. 저마다 특기를 살려 달려드는데 내가 잘못한 거라 딱히 맞서고 싶지도 않았다.
워낙 아버지에게 이 분야 조기교육을 받았고 나름 싸움도 많이 해보고, 17명한테 폭죽 터지는 밤하늘 아래서 다구리도 당해 보았기에 그냥 온몸으로 참아냈다.
한참이 지나 선배들의 기강 어린 다구리는 끝났고 우린 그렇게 다시 교실로 복귀했다.
자리에 앉아 온몸의 욱신거림 속에서도 옅은 미소가 나온다.
이 학교 정말 웃기군, 선배들이 후배들 기강 잡겠다고 수업 시간에 끌고 나가는데 선생님이 흔쾌히 보내준다니 말이다.
난 어려서 삼촌들과 함께 자라서 그런 지 15년 안짝의 선생님들은 어렵기보단 그냥 형 같았다.
중학교 적 김태준 수학 선생님도 나를 독고다이로 인정해 주시며 잘 대해 주셨고, 웅변학원 원장님한테는 형님, 형님 하며 따라다니다 대치동에 있는 형님 자취방에서 난 처음으로 포르노 비디오를 접하기도 했다.
유시철 선생님도 20대시라 결혼 후 신혼집에도 놀러가서 잠도 잔 뒤 사모님에게 배고프다며 밥도 얻어먹고 했던 기억이 새록하다.
난 태풍 후 불어오는 소슬바람을 타고 날아간 솔씨가 되어 절벽을 타고 내려가기도, 숲속 한편에 앉아 뿌리를 내려보기도 하였다.
하나님께서 내 청춘의 색감을 다크하게 선택하신 이유를 조금씩 이해되고,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는 삶의 행로에 있다.
94년 4월, 그날 뿌린 내린 날로 40년이 된 소나무는 오늘도 칼바람과 함께 밤을 지새우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