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의 시간에 내 해마에 담긴 그날의 기억을 꺼내어본다.
여름방학을 시작하면서 아버지와 또 갈등이 생겨 집에 있자니 답답해 난 북한산에 들어가기로 했다.
"저 북한산 들어갑니다. 개학 때 돌아와요."
텐트, 통기타, 라면, 취사도구, 담배 한 보루 들고 북악 터널 옆 평창동 언덕길을 통해 북한산에 올라 정상 주변 버찌나무 아래 텐트를 풀었다.
텐트 주변에는 도를 닦는 분, 40일 금식기도하는 전도사, 기도하는 무당 아줌마 등이 있었고 난 이분들의 수행에 방해될까 봐 다가가지는 않았다.
저녁이면 북한산에서 바라보는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방황하고 번뇌하는 .. "이란 내가 만든 노래를 읊조리며 희망이 없는 오늘에 지친 내 영혼을 위로했다.
며칠 지나니 준비해 온 음식은 다 동이 났고 난 준비한 람보 칼로 멧돼지나 토끼가 보이면 잡겠다는 호기도 부렸지만 결국 먹을 수 있는 건 텐트 주변에 열린 버찌나무 열매뿐이었다.
주말엔 친구들이 음식과 술, 담배를 공수해와 버틸 수 있었고 그렇게 보름 정도 지난 후 굶주림에 지친 나는 하산했다.
아직 방학 기간이 남았기에 이번엔 승현이 집 뒤편에 있는 부평 공동묘지에 가서 텐트를 치고 한 주간을 보냈다.
아침이면 승현이네 집에 가 어머니께서 주시는 푸짐한 밥상으로 배를 채우고 저녁이면 다시 공동묘지로 올라가 잠을 잔 뒤 개학 무렵 집으로 복귀했다.
공동묘지는 북한산만큼의 운치는 없으나 매일 아침밥을 먹을 수 있다는 면에서는 행복했다.
12살 무렵 간접적으로 귀신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담력이 좋은지 산과 공동묘지에 혼자 있어도 무섭지 않았다.
이렇게 보낸 방학이 지나고 집에 돌아와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이런 날들이 나의 마지막 주마등에서 한 컷, 한 컷 지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