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의 시간에 내 해마에 담긴 그날의 기억을 꺼내어본다.
동네에 중동고등학교 다니는 형이 있다. 외동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초등학교 때 집 나간 인교라는 남동생이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내 어릴 적 가출은 동네 산기슭에 숨어 잠든 것이 다였는데 이 친구는 아예 지방에 내려가 혼자 생활했다고 한다.
이렇게 만난 우리는 절친이 되었고 이후 가출을 하게 되면 인교의 도움으로 아르바이트 자리도 소개받는 등 우린 함께 어울려 다녔다.
나는 돈을 모아 신림동에 자취방을 마련했다. 홀로되신 주인 할머니가 1층 안방을 쓰고 그 건넛방에 내가 자취를 했다.
취사는 할 수 없는 잠만 자는 방이었지만 내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난 매우 흡족했다.
운명은 나의 이 작은 행복도 시샘이 나는지 그날, 사단(事端)이 나기 시작한다.
사화에서 만나 나를 잘 따르는 동생이 있어 그날 청량리 골목 주점에서 소주 한 잔 기울이고 있는데 건너편 술자리에 있는 건달 놈이 동생에게 시비를 자꾸 걸어온다.
동생 얘기론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목포 건달로 지금 일하는 곳에서 함께 일하는데 성품이 안 좋아 자주 주변에 시비를 건다고 한다.
우리는 소주를 비우고 나와 다른 곳에서 회포(懷抱)를 푼 후 집으로 가려고 골목길을 나서는데 아까 그 건달과 마주치는 바람에 나와 후배는 골목길에 선채 다시 일장연설을 듣는다.
"네, 선배님 말씀 잘 알겠습니다. 동생이 앞으로 잘 한다 하니 여기까지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난 동생 옆에서 건달 놈의 일장연설이 끝나길 기다리다 좋은 말로 다음을 기약하고자 하는데 이놈이 후배에게 싸대기를 날리며 폭행을 하는 게 아닌가
이대로 상황이 마무리되면 동생은 일하는 내내 건달 놈에게 괴롭힘을 당할 것 같아서 난 결심했다. 이 건달 놈에게서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리라.
"야 이 새끼야, 내가 적당히 하라고 했지, 너가 뭔데 동생에게 싸대기를 날리고 지랄이야. 넌 오늘 나한테 좀 맞아야겠다."
말을 마치자마자 녀석의 정강이를 발로 가격하고 원투 펀치를 날린 후 녀석의 뒷머리를 잡고 전봇대에 밀어 비벼버렸다. 당황한 건달 놈은 얼굴을 감싸며 뒤로 물러나더니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나가 목포 뒷개 선창인디.. 나가 목포 뒷개 선창인디.."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나 본인이 그 구역 출신 조폭임을 강조하는 듯하다. 나는 앞 발로 놈의 배를 한 번 더 가격하고 다시 동생을 괴롭히면 다시 찾아와 아작을 내어 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뒤 동생을 배웅해 주고 청량리를 떠나왔다.
다음 날 어떻게 알았는지 경찰서에서 내가 있는 곳으로 연락이 왔다. 건달 놈이 날 폭행으로 신고한 뒤 청량리 동산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다.
나를 아껴주는 형님이 이 일에 앞장서 주어 피해자와 합의(병원비) 하는 것으로 경찰서 건은 마무리해 주었다. 병원 또한 방문해 내가 천애 고아라 돈이 없으니 병원비에 참작을 해달라고 사정하여 120만 원 선으로 배려되었다고 한다.(병원 주변 대형 한식당 지배인이라 병원 회식 때 업소에서 일면식이 있는듯 했다.)
선배가 건달 놈에게 병문안은 한 번 가주는게 좋다고 하여 난 그날 비번이었던 인교와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 건달 놈 이름을 몰라 병원 인포에서 환자 기록을 보다 그 건달 놈이 나이를 몇 살 올린 것을 확인했다.
난 기분도 더럽던 차에 병실로 올라가자마자 녀석에게 사과는 커녕 건달 놈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야 이 새끼야, 너 차트 보니까 나이도 속였던데 죽고 싶냐? 병원비는 내가 내주지만 앞으로 주변 괴롭히지 말고 살아라. 씨벌놈아!"
문제는 내가 지급해야 할 병원비였다. 당시 한 달 월급이 16만 원이었던 터라 120만 원은 내게 큰돈이었다.
아, 속상하다. 그 골목길에서 난 침묵했어야 했나? 그냥 동생이 건달 놈에게 꼬봉처럼 취급받아도 모른척했어야 했나? 이런 상황에 마음 한편이 쓰리다.
결국, 인교와 어렵게 마련한 신림동 방의 보증금을 병원비에 보탤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난 신림동 보금자리를 처분한 뒤 삼촌이 운영하는 차량정비센터에서 근무하며 목표했던 운전 면허증을 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