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의 시간에 내 해마에 담긴 그날의 기억을 꺼내어본다.
1982년! 구슬치기, 자치기, 딱지치기 놀이가 다였던 내게 프로야구의 출범은 판타지 그 자체였다. 야구 비스무리한 짬봉치기로 좁은 동네 골목에서 야구룰에 익숙했던 우리는 주먹 대신 방망이를 들고 야구를 시작했다.
넓은 공터에서 다른 마을 아이들과 편을 갈라 처음 팀 대 팀으로 야구하던 날, 나의 두 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첫번째 타석에서 삼진으로 물러났던 나는 두번째 타석에 투수를 노려다보며 있는 힘껏 방망이를 휘둘렀다.
'딱!' 낮은 볼을 골프 스윙 폼처럼 휘둘렀는데 운 좋게 정확히 맞아 투수 옆을 지나 외야로 빠져나갔다. 그날, 그 손맛!! 그게 내 야구 사랑의 시작이었다.
며칠 뒤, 무학국민학교에서 친구가 던진 공을 저 멀리 학교 정문 밖으로 날려 버린 적이 있었다. 쭉-쭉 뻗어가는데 야구공은 내 시름도 함께 멀리 날려버니는 것 같았다.그렇게 야구는 내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난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다. 홈런을 치고 껑충껑충 뛰는 이만수가 좋았고 온화한 미소의 김시진이 좋았다. 40년이 지나는 동안 내 마음의 야구를 사랑하는 방엔 오늘도 어김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야구는 변수가 많은 게임이다. 인생처럼 매 타석 세 번의 기회를 주며 지루한 듯하다가도 어느 순 간 손의 땀을 쥐는 긴장감 속에 경기의 승패를 좌우할 순간에 맞닥드리게 된다.
팽팽한 긴장감속에서 승부는 연출되고.. 난 때론. 열광하며.. 좌절하며.. 그 순간의 주인공이 된다.
삼성 라이온즈는 원년부터 강팀이었다. 그러나 번번이 한국시리즈에서 뼈아픈 기억들이 많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기까지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매일 저녁이면 야구를 보며 올해는 다르겠지라는 기대와 다짐을 하며 응원하다 매년 가을에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팀을 보며 삼성 팬들은 가슴에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응어리를 키워나갔다.
2002년 11월 10일, 난 자동차를 운전하며 분당 GNG IDC 센터 사무실로 가고 있다. 8회까지 점수 6 대 9로 3점 차 뒤지면서 유리한 입장이던 삼성 라이온즈가 도리어 쫓기는 분위기에 힘든 상황을 맞이했다. GNG IDC 주차장에 나는 차를 주차한 뒤 라디오의 중계를 들으며 손에 땀을 쥐어내고 있었다.
그런 와중 9회 말 LG 트윈스의 좌투수 이승호가 볼넷을 내주며 위기에 몰리자 LG 트윈스의 김성근 감독은 마무리 투수로 이상훈을 등판시켰고, 삼성의 3번 타자 이승엽은 이상훈을 상대로 극적인 3점짜리 동점 홈런을 쳐 냈다. 홈런을 맞은 이상훈과 교체되어 마운드에 오른 구원 투수 최원호를 상대로 이승엽의 후속 타자인 4번 타자 마해영이 곧바로 역전 백투백 홈런 겸 끝내기 홈런을 침으로써 삼성 라이온즈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결정지었다.
난 차 안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무에 그리 힘들었을까? 나도 몰랐던 우승에 대한 목마름의 염원이 눈물이 되어 내 얼굴을 적시었다.
이후 삼성은 그간의 가을 징크스를 털어버리고 지금까지 8번의 최종 우승과 9번의 페넌트 레이스 우승, 29번의 포스트 시즌 진출이라는 명문 구단에 걸맞은 성적을 기록했다.
정규 시즌 5연속 우승의 대기록 달성 후 '권불십년 화무실일홍'이란 고사처럼 삼성 라이온즈는 날개를 잃어버린 새처럼 추락하기 시작했고 오늘도 우린 꼴찌의 불명예를 당하지 않기 위해 바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