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의 시간에 내 해마에 담긴 그날의 기억을 꺼내어본다.
국민학교 4학년, 부모님이 주산학원을 보내 주셨다.
기본학습을 하고 수업마다 한자리, 두자리, 세자리 등 자릿수를 올려가며 선생님이 불러주시는 숫자를 주판으로 더하고 빼본다.
"삼십삼 원이요, 오십칠 원이요 ... 백삼십 원이요 ... 합은?"
초급반인 우리는 십원, 백원 단위로 학습을 하는데 선생님은 가끔 말도 안되는 속도로 백만단위 숫자를 불러주실 때가 있다.
"삽백오십칠만오천칙백오십이 원이요, 팔백오십칠만육천삼백구십 원이요 ... 오백삼삼칠만사철칠백오십일 원이요 ... 합은?"
"에이~ 어떻게 이걸 우리가 해요."
"너희들도 꾸준히 학원 다니면 암산으로도 할 수 있다."
이러시며 학습 동기를 부여하시는 패턴인데 그러던, 며칠 후 선생님은 또 백만 자리 숫자를 부르시는데 어? 이상하다. 내 손이 그 백만 단위 숫자들을 주판에 올리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집중하고자 할 땐 집중력이 좋은 편이지만 지금은 그 수준을 한참 넘어서는 상황이다.
"답은?
선생님이 말을 마치자 나는 답을 부르기 시작했다.
"일천이백오십육만칠천사백오십일 원입니다."
나도 놀라고 선생님도 놀라고 아이들도 놀랐다.
선생님은 다시 백만 단위 숫자들을 불렀고 나는 그 숫자들을 주판에 올릴 수 있었다.
세 번 반복된 후엔 집중력이 흩어졌는지 다시 내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너 고급반이니?"
"아뇨, 이번 달에 초급반 들어왔습니다."
선생님은 인간의 뇌가 우연치 않게 활성화될 때가 있는데 오늘 나의 경우가 그런 경우 같다고 하신다.
아쉬운 건 집안 사정으로 주산학원을 한 달만 다니게 되었지만 내게는 신비스러운 경험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