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의 시간에 내 해마에 담긴 그날의 기억을 꺼내어본다.
중학교 2학년 첫날이다. 난 학생부 선생님의 반에 배정되었는데 의도적인 냄새가 풍긴다.
(1학년 담임 선생님도 학생부 소속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종례를 마치고 나를 학생부실로 호출하신다.
"◯◯◯, 1학년 담임 선생님에게 얘기 들었다. 네가 거칠다고 하시던데 선생님이 담임으로 있는 이상 난 네가 사고 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네, 선생님"
"너에게 학급 '규율부장'을 맡길 테니 사고 치지 말고 일 년 동안 조용히 잘 지내보아라"
"규율부장이요? 어떤 일을 하나요?
"아이들 조용히 시키고 떠든 아이는 방과 후 청소를 시키는 일이다."
"네~ 알겠습니다."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아버지로부터 해방(?)이 되어버린 나는 술, 담배를 비롯해 학교 안팎에서 세렝게티의 사자처럼 강한 수놈을 가리기 위한 전쟁의 혈투를 벌였고 그런 소문이 선생님에게 흘러간듯하다.
(한 학급당 70명, 전체 14반이기에 1,000명 가까운 수놈들 사이에서 벌이는 혈투에서 나는 직접적인 혈투보다 동료(?)들로 인한 간접적인 낙수효과로 혜택을 본 점이 많다.)
종례 전 칠판에 생활 태도가 불량한 친구들 중 서너 명의 이름을 칠판에 적었고 그 아이들은 꼼짝없이 청소를 해야 했기에 규율부장은 해볼 만한 감투였다.
공식적인 감투가 있었기에 학급 내 약한 친구들을 보호해 주는데 명분도 되고 효과적이었다.
난 나보다 강한 놈이나 도전하는 놈에게 전투적이지 약한 친구들은 앞장 서 보호해 주는 그래도 낭만(?)있는 규율부장이었다.
중학교 3학년 첫날이다. 역시 첫날 종례를 마치고 담임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호출하신다.
"◯◯◯, 2학년 담임 선생님께 얘기 들었다. 거두절미하고 너에게 '학습분위기 조성위원장'을 맡길 테니 2학년 때처럼 학습 분위기 잘 관리해 주기 바란다."
뭔 직함이 북한 인민위원장도 아니고 맘에 안 들었지만 담임 선생님이 아버지 고등학교 1년 선배시라고 하니 난 순응하기로 했다.
학교 건물로 들어설 때 실내화를 신어야 하고 그것을 규율부 아이들이 관리하는데 난 그냥 운동화 신고 들어가는 버릇을 했다.
그날, 봄비가 내려 내 신발에 흙이 묻어 있는 상태로 교실로 들어온 터라 창가 쪽 내 자리로 가려고 짝꿍에게 나오라고 했더니 이 친구는 엉덩이만 앞으로 살짝 빼고 그냥 지나가라고 한다.
"야, 너 옷 더러워질까 봐 그런 거니 그냥 나와"
짝꿍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나를 노려보는 것이 나보다 덩치가 좋으니 함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왜? 함 해보겠다는 거냐?"
짝꿍이 내 말에 뭐라 반박하자 난 그대로 주먹을 한 방 날렸다. 짝꿍이 갑자기 복도 쪽으로 나가더니 피를 쏟고 고통스러워한다.
선생님이 이 사실을 아시고 짝꿍은 병원으로 이송되고 난 교무실로 끌려가 선생님 앞에 호되게 혼이 난다.
짝꿍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턱뼈에 금이 가 와이어로 턱을 위아래로 묶어 고정시키고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게, 깜냥도 안되면서 왜 덤비냔 말이야"
속마음으로 짝꿍의 약한 맷집을 원망하여 용산중앙병원에 입원한 녀석에게 꽃을 사들고 방문해 짝꿍을 간호하시는 어머니께 사과의 말씀을 드렸다.
치료비가 180만 정도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넉넉지 못한 우리 집 재정에 큰 피해를 주게 된 이 사건 뒤로 난 가급적 싸움을 자제하려고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