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Arthur
죽음을 앞에 두고 지나간 인생의 주마등을 경험했다.
생()의 시간에 내 해마에 담긴 그날의 기억을 꺼내어본다.
독고다이, 17 대 1
1. 세링게티의 독고다이

어머니 미장원 옆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 피곤할 때 미장원에서 쉰다는 명분으로 열쇠를 받았다. 이제 여긴 내 밤의 아지트다.

외가 쪽 친척 되는 누나가 미용사로 있었는데 우린 늦은 밤 룸살롱 언니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드라이나 머리 손질을 해주는 야간 영업을 하며 용돈을 벌었다.

그러다 보니, 룸살롱에 있는 십대 언니들과 친해지게 되고 근무 중 미장원에 자주 내려와 어우리다보디 롬살롱 기도와 나는 간혹 실랑이가 붙기도 한다.

어느 날, 타 학교 무리들이 나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린 개원중학교 옆 공사 부지에서 만나기로 했다. 상대 무리는 3명 정도인 것 같고 나도 한두 명 데리고 나갔던 것 같다.

"네가 ◯◯◯냐?"

"그래, 내가 ◯◯◯다."

"네가 영동중학교 얘들 때린 놈이냐?"

"난 그런 적 없다. 그것 때문에 나 불렀냐?"

"그래, 그럼 오해냐?"

"너희가 한 판 붙고 싶어서 던진 시비면 상관없이 붙어주겠으나 그 질문에 대해선 분명한 오해다."

우린 오해를 풀고 미장원으로 가 술잔을 기울이며 밤을 보냈고 그렇게 우린 친우가 되었다.

며칠 후, 독서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중동고등학교 선배가 나를 부르더니 요즘 독서실 주변에서 개포중학교 아이들이 설친다고 나보고 손을 봐주라 한다.

그 아이들은 ◯◯독서실에 다닌다는 정보를 듣고 바로 내려가 해당 독서실에 전령을 보내 개포중학교 아이들을 내려오라 하였다. 불려 내려온 아이들을 거리에 도열시킨 후 겁박했다.

"나 중동 다니는 ◯◯◯인데 너희들 이 구역에서 나대지 마라."

아이들에게 앞으로 조용히 다니겠다는 다짐을 받고 선배에게 주의를 주었다고 전달하고 난 며칠 전 오해로 한 판 하려다 친해진 성봉이 무리를 아지트(미장원)로 불러 맥주를 마시고 시작했다.

한 아이가 아지트에서 멀지 않은 편의점 앞에 개포중학교 아이들이 모여 나를 찾는다는 말을 전한다.

우리는 술기운이 올라온 상태에서 가위바위보 하여 진 사람이 가서 해결을 하자고 되지도 않는 호기를 부리기 시작했고 가위바위보에 진 나는 빈 맥주 두병을 들고나가 편의점 앞에 있는 개포중학교 무리에게 다가갔다.

"나 ◯◯◯라고 하는데, 너희가 나를 찾았냐?"

"그래, 난 개포 일레븐의 ◯◯이다. 네가 우리 얘들을 괴롭혔다고 해서 찾았다."

"중동 선배가 나대지 말게 하라고 해서 내가 주의를 줬는데 그럼, 지금 여기서 너희랑 한 판 뜨면 정리되는 거냐?"

난 말을 하며 맥주병을 살짝 비틀어 깨며 수적으로 우위인 녀석들에게 겁을 주었다.

"오늘 말고 내일 시간을 정해서 한 판 뜨자."

"그래, 몇 명으로 붙을 거냐?"

"11명으로 붙자."

"그래, 그럼 우리도 11명 준비하마, 뭐로 붙을래? 주먹이냐, 연장이냐"

"남자답게 주먹으로 하자."

"그럼, 내일 8시 무렵 개원중학교 옆 공사현장에서 한 판 뜨자"

사실, 난 학교에서 얌전(?)하다. 친구들은 그랜드 백화점 롤라장에 가거나 대치동, 강남역 등지에 자주 몰려 노는데 학교에서도 규율부장, 학습분위기조성위원장의 직함 영향도 있지만 무리 지어 다니는 것보다 독고다이로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가끔 내 존재만 무리들에게 각인시키고 소문나면 별 시비 없이 학교생활을 잘 보낸다는 그때는 느낌대로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괜찮은 전략이었던 것 같다.

2. 쪽팔리느니 오늘 죽자~

일례로, 은마아파트 건너편 공사장 앞을 지나다 우리 학교 짱이라 불리는 놈이 경수랑(1학년 같은 반) 걸어오길래 잘 됐다 싶어 그놈을 붙잡고 괜히 시비를 걸어 벽으로 밀어붙였다.

"너 나 누군지 알지? 네가 짱이라고 얘들이 올리나 본데 난 학교 짱 같은 거 관심없다. 난 강남보다 대학로에서 주로 놀고 있으니까 나와 내 주변 친구들만 건드리지 마라.

만약, 건드리면 누가 진짜 짱인지 독고다이 식으로 확인시켜주마. 밀어붙인 건 미안하다."

이런 독고다이 기질이 있다 보니 내일 있는 결투에 실력 있는 학교 친구들을 모을 수 있는 연결망도 없고 해서 그냥 성봉이, 성봉이 친구, 성율이를 비롯해 몇 명을 더 추린 후 모자라는 인원은 지나가는 학생 중 중동중학교 학생이면 오늘 개포랑 한 판 뜨니 힘 보태라며 11명 쪽수를 채웠다.

그렇게 10월 5일 공사 부지에서 우린 개포 무리들을 기다렸는데 어라? 이놈들 봐라. 11명이 아니라 17명 정도가 몰려나왔다.

"야, 11명이라고 하더니? 왜 무서웠냐?"

"우린 의리가 좋아서 11명 모이려고 했는데 17명이 모였다."

"비겁한 변명이다. 그리고, 남자답게 주먹으로 하자더니 손에 든 쇠 파이프와 각목은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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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주먹은 시시해서 준비했다."

미친놈, 그럼 우리도 연장 준비해서 올테니 기다려라. 11명으로 17명 상대해 줄게, 건설 현장 쪽에 파이프나 각목이 있으니 우리 친구들이 다녀올 동안 내가 대표로 여기 남아 있겠다."

나는 성봉, 성율이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다녀오라고 하고 혼자 그놈들과 대치하고 있는데 이놈들이 모여 수군거리더니 모두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다.

저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본 친구들이 외친다.

"◯◯야, 피해~~~"

내 마음에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쳐가며 한 가지 결심을 한다.

"중동을 대표해 나온 내가 지금 피해 도망가면 학교 망신이다. 죽더라도 여기서 맞서 싸우다 죽는 것이 명예롭다."

지금 보면 중학생이 무슨 개똥같은 철학인지 웃기지도 않지만 그때의 난 결의에 차 큰 소리로 외친다.

"끝까지 비겁한 자식들아~ 다 덤벼라!"

"한 쪽 사이드로 몸을 옮겨 처음 달려든 놈을 제치고 그놈이 가진 파이프를 들고 맞서려는데 언놈이 던진 돌멩이가 명치에 정통으로 꽂히더니 내 숨통이 막혀버린다."

숨통이 막혀 몸을 움직이지 못한 나는 엎드려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버틴다.

다행히, 달려오던 친구들 중에 성율이가 대치동에서 이름값을 한다. 성율이는 우리보다 나이가 2살 더 많은 걸로 아는데 무슨 이유인지 우리 중학교로 전학을 와서 나와 친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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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무리 중에 대치동에 사는 놈이 있는지 성율이를 보고

"저기 선배 온다."

라고 외쳤고 상대 무리는 중동고등학교 선배들이 오는 줄 알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성율이와 성봉이는 쫓아가서 처음 나와 결투를 결의한 놈들 중 한 놈을 잡아왔다.

난 일어나 꿇어앉혀진 그놈을 보며 친구들에게 말한다.

"이 새끼, 내가 맞은 것만큼만 패주고 보내자."

영화에서 보면 17 대 1로 싸워 주인공은 이기더구먼 개뿔 원 없이 맞아보았다. 그렇게 한 밤의 결투는 나만 온몸에 피멍이 드는 상처를 입고 나는 몇 달간 대치동 성형외과를 다니며 치료해야 했다.

그날, 1986년 10월 5일은 아시안게임 폐막식 하는 날이었다. 저 멀리 잠실 쪽 하늘에 폭죽이 터지며 우리들의 치기 어린 세링게티 수사자들의 혈투를 웃어주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