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Arthur
약관을 넘어 시작된 믿음의 삶에서 그날, 성령님은 내게
치유, 기름부으심, 기쁨, 권면, 가르침, 애통, 위로하심으로 다가오셨다.
성령님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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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에 행복해하며 살아가는 범인(凡人)의 삶을 살고 싶었다.

큰 일에는 큰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기에 그날 자매에게 선물 받은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라는 성경 액자도 그다지 달갑지가 않았다.

내가 원치 않는 삶으로의 인도하심이었으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기에 난 묵묵히 그 길을 따라왔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 찬양 속 거친들과 초막에 지금 서 있다. 거친들에서 감사를, 초막에서 찬양을 하고 싶은데 주변은 그게 쉽지 않은가 보다. 그 가시가 나를 찌르고 할퀴고 조인다. 열심히 했는데, 참 열심히 했는데 거친들에 서 있다. 난 초막에서 번뇌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여태 그랬듯 결론은 내가 부족해서 나온 결과라고 단정된다.

어느 밤엔, 절벽의 끝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나를 보고 있다.

아브라함이 젖과 꿀이 흐른다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맞은 기근과 고난으로 인한 절망과 고통이 내게 투영되는듯하다. 요셉이 인신매매로 팔려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노예생활 내내 겪은 고단함과 여주인의 모함으로 인해 수치로 절규하는 기도가 오늘 내게도 흘러나온다.

소주를 나발불며 취해 집 앞 벤치에 앉아 자조(自嘲)하며 하나님 앞에 주정을 한다.

"하나님, 제게 주신 비전은 저의 깜냥이 부족해 감당이 안 됩니다. 삼성의 이재용 상무 같은 깜냥 있는 이들에게 제게 주신 은혜의 100분의 1만이라도 주시면 그들은 수개월 내에 이 비전을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부족하오니 그들에게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함께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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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 쓰러지듯 앉아 자조(自嘲)하며 취한 내게 하나님은 한마디를 던지신다.

"그들은 내 마음을 모른다."

오랜만의 음성으로 다가오셨는데 가야할 길과 피할 길을 알려주시면 좋을 듯한데 단 한마디 말씀이 전부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눅19:40).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노력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돌들을 통해서라도 당신의 뜻을 이루실 분이기에 나의 복음을 향한 몸부림만으로도 인정하시고 기뻐하실 줄은 아나.. 지치고 고된 심신은 그분의 긍휼을 바란다.

지천명을 넘기니 이제 남은 인생이 길어야 수십 년이다. 남은 인생 초막에 있을지 궁궐에 있을지 모르나 그 어디든 하늘나라 찬양하며 살아가다 하나님 품에 안기고 싶다.